1.활터의 예절
활쏘기는 예날 선비들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예절 또한 엄격하다. 활터에는 아주 많은 예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즉 등정례, 초시례, 팔찌동이다.
1) 등정례(登亭禮)
이것은 활터에 올라올 때 먼저 올라와있는 사람들한테 하는 인사이다. 정에 들어서면서 “왔습니다.” 하면 먼저 와있던 사람들은 “어서 오세요”라고 응한다. 이런 형식을 굳이 지키고 싶지 않으면 보통 인사하듯이 하면 된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활터 건물의 중앙에다 정간(正間)이라는 글자를 새겨 붙이고 거기에 목례를 하는 형식으로 점점 바뀌는 추세이다. 원래 정간은 건축물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로, 여기에 대고 인사를 하는 것은 전라도 지역의 풍속이었고, 1960년대 중반에 전국으로 퍼졌다. 황학정에는 정간이 없고 고종황제의 어진에다 인사를 한다.
2) 초시례(初矢禮)
초시례는 사대에서 첫발을 낼 때 취하는 예절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그날 첫 발을 쏠 때 한번만 하는 예이다. 활터에 올라와서 첫발을 낼 때는 쏘기 전에 “활 배웁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많이 맞추세요.”라고 덕담으로 응수한다.
3) 팔찌동
팔찌동은 설자리에 서는 순서를 말한다. 팔찌동 윗자리에 어른이 서도록 모시는 것을 말한다. 팔찌는 늘어진 소매를 잡아매는 기구를 말한다. 팔찌는 왼쪽 팔에 차므로 과녁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이 높은 자리가 된다. 따라서 서열에 따라 어른을 팔찌를 찬 왼쪽으로 서게 하는 것이 팔찌동이다. 좌궁은 우궁과 반대이다.
위의 세 가지는 전국의 모든 활터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예절이다. 따라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만 망신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정까지 망신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활터는 워낙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기 때문에 예에 대한 생각도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전국의 활터마다 각기 다른 풍속과 예절이 있다. 그 중에서 많이 알려진 예절 몇 가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 어느 활터에 가서든 결례라는 지적을 받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좋다.
▣ 동진동퇴
활을 쏘기 위해 사대에 나아갈 때나 활을 쏘고 물러날 때는 혼자서 하지 않고 옆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다 쐈다고 해서 혼자서 물러서지 못하고, 남들이 쏘는 중에 끼어들지 못 한다.같은 띠로 설자리에 들어섰으면 끝 사람이 쏘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꼭 지켜야 할 예절이다.
▣ 습사무언
활을 쏠 때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이것은 우선 옆 사람이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고, 그 다음에는 말을 하면 호흡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활은 호흡을 생명으로 하는 운동이다. 말을 하면 호흡에 변화가 생긴다. 불가피하게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길 경우에는 작은 목소리로 필요한 말만 한다. 예컨대 바람의 방향을 묻는 다거나 하는 정보를 주고 받는 선에서 짤막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 만한 부산스런 행동을 일체 삼가 한다.
▣ 남의 활을 건드리지 않는다.
이 말에는 남의 물건을 만질 때는 주인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일반 상식 이외에 더 중요한 뜻이 있다. 지금은 개량궁이 나와서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옛날 각궁은 값이 비싸고, 또 잘못 당기면 뒤집어져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될수록 남의 활은 만지지 않는 것이 예의로 정착했다. 활이 뒤집혀 부러지면 부러뜨린 사람이나 주인이나 난처한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다.
▣ 화살촉 방향
화살을 살놓이에 놓을 때에는 촉이 과녁 쪽으로 가도록 한다. 화살은 살기를 띤 무기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앉는 건물 쪽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빈 활을 당길 때도 역시 사람 쪽을 향하면 안 된다. 이런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안전의식에서 나와서 예절로 정착한 것이다.
▣ 활을 쏘는 시기
자기 차례가 와서 활을 들어올리기 전에 옆 사람이 활을 쏘는 중인가를 살펴야 한다. 옆 사람이 활을 쏘는 중이라면 잠시 기다렸다가 쏜다. 보통 때는 앞에 앞 사람이 거궁 할 때 미리 화살을 꺼내어 준비했다가 차례를 기다려 쏘면 되고, 대회나 편사 같은 정순 경기에서는 앞사람이 다 쏜 뒤에 화살을 뽑는다. 이것은 자신의 동작으로 인해서 활 쏘는 사람의 정신 집중을 방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될수록 지켜주는 것이 바른 예의이다.
▣ 몰기례
몰기를 하면 과녁에 대고 가볍게 목례한다. 옆에 있는 사람은 “축하합니다.” 라고 한다.
▣ 자리
활터에는 쇼파(의자)가 있고, 거기에 사두나 어른들이 앉는다. 특히 사두는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따라서 남의 정에 간 사람은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하여 사두가 앉는 자리에는 앉지 않도록 한다. 왜냐하면 활터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맨 먼저 이곳으로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모르고 앉았다가는 활터에서 아예 쫓겨나는 수도 있다.
▣ 복장
활터에서는 옛날부터 노인들이 활을 쏘았기 때문에 복장 격식이 엄한 구석이 있다. 옷의 경우, 츄리닝, 반바지나 러닝셔츠를 입지 말고, 면바지, 청바지, 티셔츠류를 입는 것이 좋다. 신발의 경우도 슬리퍼류를 신지 말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다. 요즘은 개량 한복을 입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 손님접대
손님 접대는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여 정중하게 한다. 너무 부담되게도 하지 않고 너무 소홀하게도 하지 않는다. 원래는 자기 정을 찾아온 손님한테는 음료와 다과를 제공하는 편이다. 그러나 손님의 사정에 따라서 서로 부담되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손님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활터에 너무 부담을 주지 않도록 처신한다.
2. 활터의 하루
활터에 들어와서 부터 나갈때 까지 이루어지는 생활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1) 활터에 올라오면서 먼저 와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정간에 대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이때 사대에서 이미 습사 중이면 조용히 들어와서 기다렸다가 습사가 끝난 뒤에 인사를 한다. 활쏘기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2) 개량궁 또는 각궁을 꺼낸 후 기타 부속장비(죽시, 팔지, 깔지, 깍지…….)도 꺼낸다. 각궁의 경우, 점화장에서 활을 꺼내어 식힌다.
3) 출석명부에 자기 이름을 적는다. 앞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미 이름을 적고서 활을 쏘기 때문에 맨 끝에 적어 넣으면 된다.
4) 화살 한 순(5발)을 골라서 확인하고 허리춤에 찬다.
5) 활을 들고 사대에 나간다. 사대에 들어설 때는 가급적 아랫사람이 서둘러 준비하고 먼저 나갈 수 있도록 한다.
6) 비정비팔로 선 다음 무겁 쪽의 바람을 살피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활 배웁니다.” 하고 초시례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맞추세요.”하고 응수한다.
7) 앞 사람이 다 낸 뒤에 자신의 허리춤의 화살을 하나 뽑아서 한 발을 낸다. 과녁쪽을 살펴보고 살 떨어진 곳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면 옆 사람한테 조용히 묻는다.
8) 화살을 과녁에 맞추면 겸손하게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못 맞추면 자신의 자세를 살피고 생각한다.(반구제기-反求諸己)
9) 한 순을 다 냈으면 맨 끝 사람이 활쏘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물러난다. 몰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축하해준다.
10) 활쏘기를 끝마치고 나면 화살을 주우러 무겁에 간다. 정 마다 차이가 있는데, 보통은 2순을 낸 다음 화살을 주우러 가는데, 3순을 내고 가는 경우도 있다.
11) 주워온 화살은 화살 받침대에 놓고, 수건으로 화살에 묻은 이물을 닦는다.
12) 화살을 쏠 때가 되면 다시 사대로 나간다. 보통은 이전 화살을 내고 약 5~10분 정도 뒤에 나간다.
13) 활을 다 내고 나면 활을 부려서 점화장에 넣고 장비를 거둔다.
14) 정을 나가 전에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정중하게 인사한다. 정을 나가려고 하는데 이미 습사가 시작되었으면 그 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인사하고 바쁘면 그냥 조용히 내려간다. 역시 습사를 방해 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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